작품 사진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흔히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은 뒤쳐지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는 의미에서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쓰이곤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열심히 굴러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듦에 따라 점차 사회에서 소외되어지고 노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차 움직임을 멈추게 되며 사회의 시선에 마음이 갉아 먹히게 된다

<Blue Moon>

'청'이 시간의 흐름을 통해 변하는 모습과 '달'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청의 이미지와 달의 이미지, 그리고 인간이 합쳐졌을 때 세 가지의 속성이 융합된다. 사회의 막연한 관점에서 생각할 때, 나이듦이라는 부정적이고 일방향적인 흐름에 놓인 인간. 멋을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늙게 만드는 청 의류. 당연하게 작아짐과 커짐을 반복하며 영속하는 달. 세 가지의 키워드들은 모두 다른 속성을 갖지만, 모두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존재이다. <Blue Moon>에서는 인간, 청, 그리고 달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P>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귀해진다. 숙성된 회나 고기는 더 비싸진다. 이렇듯 대부분의 것들이 나이 들수록 가치있어진다.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면 소모품이다. 사람은 소모품이 아니다

<N>

시간의 흐름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나의 보석이 점점 드러나기 때문이다. <N>은 스스로의 보석을 잘 보듬어주고 있는지, 그것은 지금 어떤 매무새인지 돌아보고자 한다. 1번으로 태어나 n번이 되었을 시간의 흐름과 나의 보석을 기억하고 안아보자

<우리 주변의 위인들>

위인의 명언은 새겨 들으나 인생의 지혜가 담긴 노인의 발언는 잔소리일 뿐인가? 우리 주변의 노인들의 평범한 말들에 위인들의 명언과 같은 가치를 부여해보자.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말들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Van Gogh>, <Henry Matisse>, <Green Book>, <I'm Young>

누군가가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모습은 그 어떤 모습보다 큰 영감을 준다. 화가로서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해 불꽃처럼 살다 간 반 고흐.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숨이 닿는 데까지 병상에서 그림을 그린 앙리 마티스. 주어진 삶의 조건이 남들과 다른 상황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던 영화 속 주인공. 이들처럼 나이 혹은 주변의 차별적인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걸음걸이로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은 늘 큰 감동과 위안을 준다

<너나 나나 변하는 건 같단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기념 사진이 주로 등장한다. 개인이 아닌 군집 형태의 기념 사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과거의 사진은 물론이요, 오늘날 각종 단체들이 답사 혹은 여행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들도 있다. 작품에 등장한 장면의 예를 들면 경주의 불국사, 첨성대, 예산 수덕사,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명동 성당과도 같은 한국의 주요 건축물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 사진들을 볼 수 있으며 스무 명에서 삼십 여 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층을 만들어 키가 작은 이는 앞쪽에 모여서 앉아있고, 키가 중간인 이들은 중간층, 그리고 키가 큰 이들은 맨 뒤쪽에 발 뒤꿈치를 올리고 서서 단체 사진의 정경을 만들고 있다. 어린 시절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우리에게 늘 행복한 여유와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것을 기록한 기념 사진,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가족적인 형태의 장면들이 그 정경 안에 등장하는 것이다. 누구나 몇 권씩은 가지고 있을 사진 앨범들, 집의 장롱 속이나 책장 구석에서 곱게 잠자고 있을 그 낡은 앨범 속에는 교복을 일정하게 맞춰 입고 친구들과 함께 소담한 마음으로 여행의 흔적을 기록하고자 촬영한 사진들이 숨어 있다. 지금은 예순이 다 되신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진과 함께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내 사진들이 더불어 공존하고 있으며 70년대의 빛바랜 흑백 풍경과 90년대의 천연색 풍경 사이에서 이질적인 모습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기념 사진의 장면을 통해 나이와 세대를 아우르는 일종의 '끈'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 어덜트 존>

노 키즈 존으로 대표되는 어린이에 대한 연령 차별을 풍자하고 '어른들을 위한 질서'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우르르쾅쾅 프로덕션>

제 1회 나이주의 Film Festival은 우르르쾅쾅 프로덕션이 기획한 1회 영상제로, 세대 간의 소통과 더 나아가 세대의 통합을 표방한다. ‘나이 드는 것은 무엇이며, 어째서 우리는 나이든 이와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할까?’라는 생각에 기반한 영상들은 연령 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노인 및 노화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나이의 별명>

나이에는 다양한 이름이 따라붙는다. 초딩, 급식이, 젊은이, 노인 등 우리는 나이에 따라붙는 이름을 달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름에는 사회적 편견이 녹아있다. 아무리 생각이 깊은 '초딩'이라도 '유치한'이라는 편견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 힘들다. 아무리 생각이 열린 '노인'이라도 '꼰대'라는 편견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 힘들다. 그래서 나이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최근 SNS에서 유행한 인디언식 작명 방법으로 나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본다. 나의 인디언식 이름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견출지에 그것을 기록하여 간직해보자

<Listen to Your Ageism>

'나는 들을 일 없을거야'라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편견의 말들을 관람자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 듣는다. 노인에게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편견으로 이루어졌다는 자각을 유도한다

<호명>

2020년을 맞이하며 우리의 나이는 또 다른 호명을 감지한다. 호명의 경험들이 작품 위에서 무작위하게 모였을 때 역설적으로 그 경험들은 흐릿해진다. 이를 통해 '이름의 부름과 해체'라는 전시 제목을 전달한다. 덕지덕지 붙여진 트레이싱지를 볼 때 느껴지는 것은 에이지즘에 갇힌 인간의 무의식이다. '부름'의 경험을 나누는 행위는 그러한 무의식의 구조를 직면하게 하고, 우리의 의식은 마주한 구조를 '해체'한다. 이름을 부르는 과정이 이름을 없애는 길목을 만들어내는 역설이 바로 데리다가 말한 환대의 딜레마이다.

<노화 연습>

노화는 천천히 찾아오고, 막을 수 없으며,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포스터를 찬찬히 읽으며 연습해 보자. 조금씩 변화하는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또 어느 샌가 눈에 띄게 변해 있다.

<장단점>

흔히 젊음은 다채로움에, 늙음은 무채색에 비유된다. 여러 색이 거쳐 간 세월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노랑과 검정은 심한 대비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색 조합인데, 여기서 검정은 그저 배경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색이 강조되며, 노랑과는 다른 무기를 가진다.

<개인의 특성>

사회적 약자를 향한 언어 혐오는 사회에 아주 옅게 깔려 있어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 대신 ‘사람’을 넣는 것. 그렇다면 반대로,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노인’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까?

<7, 25, 80>

나의 7살이 떠올랐다. 영원히 7살로 살게 해달라는 기도로 하루를 마치곤 했다. 그 때가 너무 행복했는지 8살의 미래가 두려웠는지는 모른다. 지금은 얼마 남지않은 25살의 젊음의 순간이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바란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나이듦이란 안정감을 준다. 그렇기에 나의 80살은 지혜로운 행복의 영원을 바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누구나 행복의 지속성을 염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언제나 타당하다

<하얀 벽 신화>

인류는 무료함을 달래고자 벽을 만들었다. 오랜 노력 끝에 만들어진 벽은 하얗고 매끈하며 탄력이 있었다. 이후 벽 뒤에서도 인간이 태어나기 시작했는데 인류는 그들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벽 뒤에서 A가 태어났다. A는 눈 앞에 있는 벽에 자신을 새기고 싶어했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 자신과 벽의 이상적인 각도와 깊이를 깨달았고 벽과 자신의 관계를 가시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벽의 안락함을 날카롭게 뚫고 나오는 파괴의 욕망을 마주했다. 벽에 대한 A의 감정은 복잡해졌다. A는 벽이 필요했고, 동시에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A의 줄다리기는 안락과 답답의 경계를 팽팽하게 만들었는데, A가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줄이 끊어졌다. 벽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때 벽의 자리에 서있던 사람이 a라는 것을 A는 쉽게 알아챘다. a의 눈이 모든 것을 희석할 정도로 맑았기 때문이다.

<주름>

노인을 단순히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이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경험이나 추억, 생각들이 쌓이고 축적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점을 할머니의 손 위에 여러 세월들이 담긴 장면들을 매핑하여 드러낸다.

<F=ma>

질량 (m)은 '나이'를 상징하는 시간의 질량이다. 인간의 나이는 시간의 질량이 쌓인 정도에 따라 '살'이라는 단위로 표현된다. 가속도 (a)는 시간의 속도가 변하는 정도를 나타내며, 시간의 질량과는 다르게 주관적으로 측정된다. 이 때 한 인간이 가진 시간의 힘 (F)은 질량과 가속도를 모두 알아야 온전해진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시간의 질량만을 묻기에, 우리는 당신에게 시간의 가속도를 묻는다.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요?". 관람객에게 제시한 질문은 나이에 종속되지 않는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개인의 시간 위를 걷는 걸음거리이다.

<대답>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터뷰 답변을 1020 세대의 목소리로 담았다. 젊은 세대의 목소리로 표현된 나이 든 세대의 삶을 목격하며 관람자는 이질감을 느낀다